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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판 ‘총독의 소리’ |
2013년10월18일(Fri) |
|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김동춘 |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무렵 최인훈은 “해방된 노예의 꿈은 노예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라고 돌아온 일제 조선 총독이 ‘조선 백성’들에게 ‘반도 재입성’의 원대한 구상을 밝히는 ‘총독의 소리’라는 소설을 썼다. “충용한 제국 신민 여러분, 제국이 재기하여 반도에 다시 영광이 돌아올 그 날을 위하여 은인자중 맡은바 고난의 항쟁을 계속하고 있는 제국 군인과 경찰과 밀정 여러분… 자중자애하고 권토중래를 신념 하십시오. 반도는 제국의 꿈, 제국의 비밀입니다.”라는 패러디는 1965년 이후 거의 반세기가 지난 2013년 오늘, 섬짓한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것은 총독이 아니라, 이 ‘반도’ 내의 총독의 후예들이었다.
사관(史觀)의 눈으로 사실(史實)을 왜곡해서야
‘그들’은 확실히 권토중래했다. 그 동안은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 그리고 정치권 구석에서 나온 어이없는 주장 정도로 치부될만한 주장들이 이제 막강한 국가권력의 힘을 얻어 집행되기에 이르렀다. ‘자학사관’을 극복하자는 교학사의 ‘뉴라이트 교과서’ 검정 합격이 그것이다. 역사학계가 이 책의 수많은 오류에 대해 비판을 하자, ‘뉴라이트’ 측의 대표집필자들은 중요한 것은 ‘사관’이라고 응답했다. 그렇다. 일제 말 독립군 토벌부대인 일본군 간도특설대 출신이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어 경제기적의 주역이 되고, 또 한 사람의 군인을 한국군에서 가장 본받을만한 원로라고 억지로 추켜세워도,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찬양하던 신문이 그 이후에는 또 군사독재를 찬양하다가 지금도 1등 신문으로 위세를 떨치는 것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일본 극우파의 후쇼사 교과서가 그랬듯이, 그들은 20세기는 자유와 공산 진영의 대결의 역사였고, 일제의 제국주의와 냉전, 군사독재는 모두 자유의 역사의 일부에 속해 있다는 ‘사관’을 모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확고히 심어서, 다시는 자주니 평등이니 하는 헛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니 일본 제국주의와 미국은 원래가 자유 진영에 속했던 한 편이었고, 독립을 쟁취하겠다고 맨주먹으로 이 땅에서 일제에 맞섰던 어리석고 무지한 ‘투사’들 보다 미국에서 ‘자유’의 신념을 확고하게 하면서 이제 일본이 망하면 미국을 충실히 따라야 한다는 ‘외교’ 노선을 폈던 이승만이야말로 ‘건국’의 영웅이요 탁견을 가진 선구자였다는 것이다. 냉전으로 미국이 이 땅에 들어온 덕에 지난 60여 년 동안 또다시 권력을 잡고 부도 누렸으나, 그것이 일제에 부역하고 정부 수립 이후에는 저항하는 동포들을 총칼로 진압한 공으로 얻은 전리품이라는 내부의 지속적 비판에 몹시 불편했던 그들은 이제 자신이 누리는 권력과 부가 일본과 미국의 현지 대리자 노릇으로 얻는 보너스가 아니라, ‘반도’의 현실을 잘 알고 시대의 추이를 바로 읽었던 높은 식견이 준 보상이라고 말한다. 치욕은 이제 자랑이다.
새로 쓴 ‘노예들의 합창’
그렇다. 우리는 며칠 전 그동안 일본을 미국의 핵우산 보호 아래에서 자주국방 없는 반쪽 국가로 머물도록 하면서 아시아와 세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도록 후원해온 미국이 이제 일본의 재무장(집단자위권 행사)을 추인한다는 놀라운, 아니 충분히 예상했던, 소식을 듣게 되었다. 1905년, 그들의 대표 카츠라-태프트가 비밀리에 만나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하며 한목소리를 냈듯이, 이제 또다시 한반도에서 분쟁이 일어나 ‘일본의 안보’를 위협하면, 합동으로 작전을 펼치겠다고 하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박근혜 정부는 미국에게 전시 작전권을 2017년 이후로 연기하자고 제안함으로써 미국과의 ‘방위동맹’을 영구히 하자고 했고, 미국이 일본 재무장을 인정하겠다는 것에 대해 한 줄의 논평도 하지 않았다. 물론 새롭게 시동을 건 중국과의 ‘등거리 외교’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래서 최인훈이 다시 소설을 쓴다면 ‘총독의 소리’가 아니라 ‘노예들의 합창’이라는 제목을 붙인 다음, 이렇게 써내려갈 것 같다.
“남한에 단 한 명이라도 종북파가 존재하는 한, 북한에 단 한 개의 핵이 존재하는 한, 자유세계의 완전 승리를 위해 미군은 남한에 영원히 주둔해서 우리를 보살펴야 하며, 과거 한반도에서 청일전쟁이 터져 일본이 동학 비적들을 토벌하러 왔듯이, 만일 종북파들이 준동하면 그들을 진압하기 위해 일본군이 남한에 상륙하는 것도 받아들이겠다.… 배고픈 자주는 구시대의 유물이고, 자주와 평등의 구호는 빨갱이들의 시대착오적 단골 메뉴다.… 가난은 죄다. 우리를 ‘검은 머리의 외국인’이라 말하지 마라. 글로벌 시대에 고리타분한 민족주의를 들먹이는 것은 계속 루저로 살자는 이야기다. ‘글로벌 스탠다드’를 열심히 ‘팔로우’ 해서 미・일이 ‘리드’하는 ‘글로벌 리그’의 ‘플레이어’가 되자.”[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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